고혈압을 만드는 사회, 대한민국

고혈압을 만드는 사회, 대한민국
출처: 서울관광재단

이 글은 BIOCODE Labs의 연구 보고서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습니다.¹ 

의학적 소견이 아닌, 평생을 데이터 시뮬레이션 연구에 바친 카이스트 공학자의 시선으로, SCI급 연구데이터에 기반해 작성된 글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50대 초반, 요식업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매일 저녁 8킬로미터를 달린다고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면 정상 혈압이겠지?' 그런데 혈압이 175였습니다.

주 6일은 매일 8Km를 달리는 50대 남성의 기록 화면

납득이 안 됐습니다. 본인도 그랬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건 이분 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분 같은 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매일 유기농 채소로 채식하는데 혈압이 180인 분, 약을 2알 이상 늘려도 혈압이 190이 넘는 분. 중요한 건 이분들이 저와 아주 가까운 지인이자, 가족이었습니다.

의료강국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정말 궁금해서 데이터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유기농 채식을 한다는 분의 실제 아침 식단 사진

이분들의 혈압 정상화 사례와 방법은 아래 페이지에 올려 두었습니다.
500여편 논문 데이터, 120 케이스 시뮬레이션 고혈압 원인 분석 케이스


"대한민국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고혈압."²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출처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통계 오류인가 싶었습니다. 세계인이 의료관광을 오는 나라입니다. 건강검진을 가장 열심히 받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심장질환과 뇌졸중이 사망원인 3·4위이고,³ 심근경색의 57%,⁴ 뇌졸중의 68%가 고혈압에서 옵니다.⁵ 가장 흔하면서 가장 위험한 병. 그 숫자가 이 나라에서 줄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흔한 질병, 하지만 리스크는 너무나도 큰 질병, 고혈압.

고혈압은 생활습관 질환입니다. 그렇다면 생활 속 어딘가에 반드시 답이 있을 터였습니다. 네이처 등 SCI급 논문들의 데이터를 모델링하고, 120개 케이스에 시뮬레이션을 적용하고, 실증 검증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한 가닥씩 따라가다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고혈압은 원인을 모릅니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국심장학회 자료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고혈압의 90~95%는 단일한 원인이 없는 본태성 고혈압으로, 원인을 모르는 게 아니라 원인이 너무 많고 서로 얽혀 있다는 뜻입니다. 유전적 소인이 있어도 생활습관으로 정상 혈압을 되찾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⁶ 유전은 방아쇠를 당기기 쉬운 조건일 뿐, 정작 방아쇠를 당기는 손은 따로 있습니다.

그 손을 찾아봤습니다.


유럽심장학회의 고혈압원인지도 연구에 따르면, 고혈압의 원인은 462가지에 이릅니다.²⁰

유럽심장학회, 고혈압원인지도 데이터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논문들의 데이터를 모델링하고, 120개 케이스에 시뮬레이션을 적용하고, 실증 검증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짚어 들어가다 보면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회가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국 성인에게서 가장 자주 확인 되는 원인은 네 가지 였습니다. 읽으면서 어제 하루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첫 번째는 수면입니다. 하루 5시간 미만으로 자는 것만으로도 고혈압 위험이 최대 40% 올라갑니다.(기준 수면시간은 7-8시간 입니다) 104만 명을 추적한 메타분석의 결론입니다.⁷ 그런데 대한민국은 OECD에서 가장 적게 자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수면은 시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557명의 수면 데이터 25만 건을 분석한 연구에서, 평소보다 단 30분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심박수가 올라가고 그 영향이 다음날 오후까지 이어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⁸ 어제 늦게 잔 것이 오늘 저녁까지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심박수가 10회 오를 때마다 고혈압 위험은 11%씩 올라가고,⁹ 분당 80회를 넘으면 심혈관 사망 위험이 21% 높아집니다.¹⁰ 야근이, 스마트폰이, 내일 걱정이 매일 밤 그 리듬을 조금씩 흔들어놓습니다.

좌측: 30분 일찍 잔 사람은 심박이 안정화 된다. | 우측: 기존시간 보다 30분 늦게 잔 사람은 심박이 지속 상승한다. 출처: 네이쳐 논문 Deviations from normal bedtimes are associated with short-term increases in resting heart rate

두 번째는 앉아 있는 시간입니다. 좌식 시간이 두 시간 늘 때마다 고혈압 위험이 10~30%씩 올라갑니다. 따로 운동을 해도 이 위험은 완전히 상쇄되지 않습니다.¹¹ A씨가 8킬로미터를 달려도 혈압이 안 잡혔던 게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자동차 등록 대수는 인구 두 명 중 한 명꼴입니다.¹² 걸어서 오 분 거리도 차를 탑니다. 오전에 책상에 앉고, 차를 타고 이동하고, 또 오래 앉고, 다시 차로 돌아오는 하루. 고개를 60도 숙여 스마트폰을 보면 경추에 27킬로그램의 하중이 실리고, 흉곽이 조이고, 혈류에 부하가 쌓입니다. 앉아 있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이 사회의 일상이 됐습니다. 아래 논문은 오래 앉아 있고, 구부정한 자세가 혈압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Xiao, J., Li, T., Wang, Y., Zhao, Z., Xie, J., & Zhou, J. (2025). Effects of severe scoliosis on cardiac structure and function in resting patients: a retrospective study. Journal of Orthopaedic Surgery and Research, 20(681).

셋째는 만성 스트레스입니다. 심리사회적 스트레스가 고혈압 위험을 최대 45%까지 끌어올립니다.¹³ 위협이 감지되면 뇌는 즉각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고, 혈관이 조이고, 몸 전체가 긴장합니다.¹⁴ 이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중산층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셜미디어를 열거나, 지인을 만나면 누군가는 항상 나보다 나아 보입니다.¹⁵ 비교는 끝이 없고, 긴장도 끝이 없습니다. 그 긴장을 잊으려고 늦은 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¹⁶ 그 행동이 다시 수면을 망가뜨리고 혈압을 올립니다.

넷째는 늦은 저녁입니다. 자기 두 시간 전에 식사를 하면 야간 수축기 혈압이 6~10mmHg 오르고, 야간에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비저하형 고혈압 위험이 두 배가 됩니다.¹⁷ 야근 끝에 밥 한 술 뜨고 바로 누우시는 분들, 그 패턴이 매일 밤 혈관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셈입니다.

이 네 가지가 겹쳐 있는 하루. 이게 어디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 일까요?

2023년 기준 주간 근로시간 38.9시간, OECD 평균을 웃돕니다.¹⁸ 고혈압 유병률은 2023년 29%, 2024년 28.5%, 2025년 29.2%.¹⁹ 구조가 바뀌지 않으니 숫자도 바뀌지 않습니다.

중년이 되면 문제는 더 깊어집니다.

은퇴하고, 아이들이 집을 떠나면 하루가 텅 빕니다. 그 공백을 가장 손쉽게 채우는 게 TV입니다. 유럽심장학회 연구는 TV 시청 시간을 고혈압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습니다.²⁰ 좌식이 늘고, 수면이 늦어지고, 교감신경이 밤늦게 깨어납니다. TV 한 대가 고혈압의 원인 세 가지를 동시에 만드는 셈인데, 그게 전부도 아닙니다.

슬픈 현실이지만, 외로움 자체가 혈압을 높인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덴마크에서 34만 명을 18년간 추적한 연구가 있습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혈압이 높았습니다. 나이도, 체중도, 흡연도 통제했는데 차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²¹ 14개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고혈압이 생길 확률이 29% 높았습니다.²² 중년기의 단절감은 10년, 20년 뒤 혈압계 숫자로 돌아온다는 연구도 있습니다.²³ 어떤 연구자는 사회적 고립의 심혈관 위험이 하루 담배 한 갑과 맞먹는다고 말합니다.

이 연관성이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닌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뇌는 사회적 고립을 위협으로 인식합니다. 위협을 감지한 뇌는 교감신경계와 스트레스 호르몬 회로를 켭니다.²⁵ 심박수가 오르고, 혈관이 수축하고, 레닌-안지오텐신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혈압이 올라갑니다.²⁶ 고립이 만성화되면 코르티솔 수치가 유지되고, 혈관을 확장하는 산화질소 생성이 줄면서 동맥이 굳어가기 시작합니다.²⁷ 잠을 자는 동안에도 혈압이 잘 떨어지지 않는 상태, 이른바 '논-디핑'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²⁸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심혈관계에 직접 작용하는 생리적 자극입니다.

병원에서는 왜 해결하지 못했을까

진료실에서 이 원인들이 잘 발견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인은 462가지인데 한국의 평균 진료 시간은 3분입니다. 수면 패턴, 자세 습관, 업무 강도, 식사 시간, 스트레스 유형을 3분 안에 어떻게 다 물을 수 있을까요. 묻고 싶어도 묻지 못합니다. 의사의 무능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한계입니다. 원인은 '불명확'으로 남고, 약이 하나둘 늘어나고, 부작용이 생기고, 어떤 약을 써도 혈압이 잡히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으로 이어집니다. 대한민국 고혈압 환자 약 1,300만 명 중 최대 195만 명이 저항성 고혈압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²⁴

고혈압은 조용합니다. 통증이 없습니다. 그래서 방치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조용한 시간 동안 혈관은 쉬지 않고 닳아갑니다. 저희가 분석한 케이스들에서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건 하나였습니다. 모두 예방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A씨가 원인을 끝내 못 찾고 약만 계속 드셨다면. 그냥 이런가보다 하고 살았을 겁니다. 막연하게 더 노력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체질 탓을 하고, 혈압약 한 알이 두 알이 되는 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위험은 늘 몸 안에 있었겠지만 그게 얼마나 큰 위험인지 모른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겁니다.

그런데 데이터는 달랐습니다. 들쭉날쭉한 수면 패턴, 그리고 4시간 이상 이어지는 좌식 환경. 원인은 거기 있었습니다. 숫자만 봤다면 '혈압 높음'으로 끝났을 이야기입니다. 데이터를 해석하자 그 사람의 하루가 보였습니다.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생계를 위해,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버티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오후마다 혈압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업무 중 짧은 스트레칭 하나, 자기 전 루틴 하나. 2주 만에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원인을 잘 알면 충분히 개선 가능합니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건 어렵습니다. 정보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몸에 새긴 습관은 혼자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퇴근 후 한잔은 하루를 버티는 방식이었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은 같이 먹던 기억과 붙어 있습니다. 이건 나쁜 습관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결입니다. 그걸 의지 하나로 바꾸라는 건 가혹한 요구입니다.

그래도 바뀌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건강한 생활을 하고 싶은 이유가 생긴 사람들입니다. 더 오래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이 생겼거나,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다는 걸 다시 깨달았거나. 그 마음이 오래된 습관보다 커졌을 때 분석 결과대로 몸도 마음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생겼다면 절반은 온 겁니다. 나머지 절반은 원인입니다. 내 몸이 왜 반응하는지 알면 방향이 보입니다. 지금은 손목 위 기기와 스마트폰 하나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462가지 중 나에게 해당하는 한두 가지를 특정하는 일입니다. 원인을 알고 나면 변화는 생각보다 쉽고 빠릅니다.

이 글을 읽으며 누군가가 떠오른 분이 계실 겁니다. 혈압약을 드시는 배우자, 고혈압 판정을 받은 부모님, 야근에 지쳐 있는 친구.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회 안에서 열심히 살아오다 몸이 보낸 신호였습니다.

건강은 결국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내 몸이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무엇에 반응하는지. 그걸 알고 나면 선택은 생각보다 단순해집니다. 그동안 노력해도 안 됐던 건 게으름이 아니라 정보의 부재였습니다. 모두가 그 길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같은 고민을 먼저 통과한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글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데이터 분석 2주 만에 혈압 180에서 120으로]


참고문헌

¹ BIOCODE Labs, 2026. 직장인 생체데이터와 고혈압 생활습관 상관관계 비교분석 보고서.
² 대한고혈압학회, Korea Hypertension Fact Sheet 2025.
³ 국가데이터처, 2024년 사망원인통계결과.
⁴ 대한심장학회, Current status of acute myocardial infarction in Korea.
⁵ 대한뇌졸중학회, 2024 팩트시트.
⁶ NHLBI JNC 7 Complete Report.
⁷ Wang Y, et al. (2024). Association between sleep duration and hypertension incidence. PLoS One, 19(7):e0306640.
⁸ Faust L, et al. (2020). Deviations from normal bedtimes are associated with short-term increases in resting heart rate. npj Digital Medicine, 3:39.
⁹ Aune D, et al. (2018). Resting heart rate and the risk of hypertension and heart failure: a dose-response meta-analysis. J Hum Hypertens, 32(2):71–82.
¹⁰ Zhang D, et al. (2016). Resting heart rate and all-cause and cardiovascular mortality in the general population: a meta-analysis. CMAJ, 188(2):E53–E63.
¹¹ Patterson R, et al. (2024). Impact of Sedentary Behaviors on Blood Pressure and Cardiovascular Disease. Hypertension, 81(10):2156–2166.
¹² 국가데이터처, 자동차 등록 현황.
¹³ Spruill TM, et al. (2017). Association between psychosocial stress and hypertension. Neurol Res, 39(6):573–580.
¹⁴ Dickerson SS, & Kemeny ME. (2004). Acute stressors and cortisol responses. Psychological Bulletin, 130(3):355–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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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⁶ Blascovich J, & Tomaka J. (1996). The biopsychosocial model of arousal regulation.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28:1–51.
¹⁷ Radaelli MG, et al. (2016). Late dinner eating and cardiovascular risk; Lee S, et al. (2021). Epidemiol Health, 43:e2021091.
¹⁸ KOSIS / 고용노동부, 연도별 근로시간 통계(2023–2025).
¹⁹ 질병관리청 만성질환관리국 건강영양조사분석과 / KOSIS, 고혈압 유병률 추이 2015–2024.
²⁰ Liu K, et al. An atlas on multitudinous risk factors associated with incident hypertension: comprehensive exposome-wide association and wide-angled genetic analyses.
²¹ Liu K, et al. (2019). Social Isolation and All-Cause Mortality: A Population-Based Cohort Study in Denmark. Scientific Reports, 9(1):13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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²³ Cacioppo JT, et al. (2015). Loneliness across the life span and across generations are associated with late-life hypertension. Psychology and Aging, 30(2):302–311.
²⁴ Korea Hypertension Fact Sheet 2024; 대한고혈압학회 팩트시트 저항성 고혈압 유병률 요약.
²⁵ Cacioppo et al., 2014, Neuroscience & Biobehavioral Reviews; Hawkley & Cacioppo, 2010, Nature Reviews Neuroscience.
²⁶ Steptoe et al., 2004, Psychosomatic Medicine; Peters et al., 2017, Psychoneuroendocrinology.
²⁷ McDade et al., 2006, PNAS; Libby et al., 2002, Nature.
²⁸ Steptoe et al., 2004, Psychosomatic Medicine; Landsbergis et al., 2013, Journal of Hypertension.